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한국-쿠바 관계 (문단 편집) === 20세기 === 20세기에 멕시코에 거주하던 한인 일부가 쿠바로 다시 옮겨간 적이 있었다. 이 한인들은 쿠바에 정착한 뒤에도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고 쿠바에서도 한글학교를 세우는 등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으나 그 후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쿠바인들로 동화되었다. 공산주의 혁명 이전까지 쿠바는 친미 자본주의 국가였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때 [[풀헨시오 바티스타|바티스타]] 정부가 [[UN]]의 대한(對韓) 지원에 적극 동참하여 27만 달러의 물자원조를 보내주는 등 [[남한]]과 우호적인 나라였다. 1958년에는 주중국(대만) 상주 쿠바 대사로 부임한 로센도 칸토 에르난데스가 주한 공사 겸임을 발령 받아서, 1959년 1월 한국 정부에 신임장을 제출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59년 [[피델 카스트로]]가 [[쿠바 혁명]]을 일으키고 이후 공산국가로 변모하게 되면서 당초 주한 공사로도 겸임할 예정이던 로센도 대사는 자진 사임 후 망명했고 남한과의 교류를 단절했다.[* 간혹 '단교'라고 하는데 정식으로 수교를 맺은 적이 없으니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이후 북한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국제사회에서 사회주의 진영과 함께 남한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취했다. [[주한미군]]의 주둔을 문제삼아 한국을 [[미국]] 식민지나 다름없는 국가라는 주장도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은 정권이 바뀐 쿠바에서 사실상 무국적 상태였음에도 대부분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쿠바 혁명]]이후 [[체 게바라]]는 쿠바에 사는 한인들이 남북한 모두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민심수습 차원으로 당시 쿠바와 수교를 맺기 직전의 북한 측에 같은 민족끼리 서로 돕는 게 어떻겠냐고 인도적으로 대할 것을 권장했다. 정작 북한은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그저 한인들에게 [[답정너|사상전향을 강요했다]]. 한인들을 전향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방문했다가 집집마다 [[3.1 운동]] 직후 한인들이 [[태극기]]를 들고 쿠바에서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는 사진이 액자에 담겨 있거나 혹은 집에 태극기가 걸려있는 모습을 보고 애꿎은 한인들에게 반동이라는 비난을 퍼붓고 가버리기도 했다.[[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160609/78565589/1|#]] [[1988 서울올림픽]] 때는 IOC 회원국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동조에 맞춰 아예 불참해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서울올림픽 직후에 냉전 구도가 붕괴되면서 쿠바도 [[대한민국]]과 점차 관계를 회복하려고 하였다. 1992년 양국 체육관련장관 회담이 개최되어 스포츠 교류의 길을 텄다. 1997년 무주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쿠바가 불참했지만, 이는 정치적인 이유로 불참한 것이 아니라, 쿠바 자체가 무더운 적도 부근에 위치해 있어 동계 대회에 참가할 여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도 같은 이유로 불참했다. 1997년에는 양국간의 협력의정서가 체결되었다. 이후에도 관계가 점차 나아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